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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은 몸과 마음에 녹아야 참다운 가치
경전·참선공부 고르게 해야
참선만하면 마음은 움직이나 말을 제대로 못하고 경전만 읽으면 입은 있으나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
말·행동 다르면 부처님 파는일 좋은 말도 실천않으면 소용없어
無味 모르며 어찌 진리 찾겠나 스님들 노후위한 ‘승로원’ 필요
◇일우스님은 모든 일상이 수행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진리도 바로 거기에 있다고 하셨다.
◇엄해 보이는 겉 모습과는 달리 스님은 모든 이에게 자상하고 친절하다.
보현사는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대웅전 앞으로 몇 백 년 됐음직한 아름드리나무가 자리 잡고 있고, 뒤로는 통일약사여래 대불과 옥으로 조성한 천불이 청도읍내를 굽어보고 있었다. 전통사찰답게 고풍스런 분위기가 묻어났다. 한 신도의 안내로 일우스님이 거처하는 고불당(古佛堂)에 들어서자, 스님과 얘기를 나누던 신도들이 자리를 양보했다. 지난 8월말 태고종 원로회의 초대 의장에 추대된 일우스님. 180Cm쯤 돼 보이는 큰 키에 다소 마른 체격, 검게 그을린 얼굴이 첫눈에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강한 인상과는 달리 신도들에게는 자상하고 친절하셨다. 누구에게든 스님의 방문은 열려 있고, 이날도 스님과 신도들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스님께 좋은 말씀을 듣고 싶어 찾아왔다며 말을 꺼냈다. “산천초목과 산하대지 불법인연 아닌 것이 없는데, 굳이 내게 무엇을 물으려 하시는가. 무정설법이 진실로 불법이니 나는 할 말이 없다. 유정(有情)으로 나투는 것이 어디 불법이던가. 자네들이 부처인데 어디에서 부처를 구하려는가.” “원로회의 의장이 되셨으니 더 바쁘시겠습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어.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때 되면 일하고 그렇지 감투하나 썼다고 근본이 달라질 수야 있나, 화경청정(和敬淸淨)하면 그만이지. 자연과 시비하지 않고 만물을 공경하고 깨끗하게 사는 것이 내 명심(銘心)이야.” 스님은 하루 3~4시간은 일을 하신다. 지게를 지고 다니는 것은 물론이고, 밭을 일구고 농약을 치는 일까지도 모두 손수 하신다. 1950년 보현사 주지를 맡은 이후로 줄곧 이렇게 생활하다보니, 이제는 웬만한 일꾼도 스님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라고 신도들은 전했다. 이날도 스님은 오전에 감나무에서 감을 따는 일을 직접 하셨다고 한다. 이토록 일에 매달려 오신 까닭은 무엇일까. “자연은 거짓이 없지. 자연과 대화하면 그 위대함과 솔직함에 고개가 숙여져. 참선을 하고 경전공부를 해야만 불법에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수행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미 틀린 거야. 무엇을 하든 수행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이 곧 수행이요, 단순히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저 일일 뿐이지. 진리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멀리서 구하려고 하니 무엇을 얻겠는가.” 스님의 일상은 늘 이렇게 노동으로 채워진다. 새벽 3시 아침예불을 시작으로 참선과 독경, 그리고 신도들을 만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밭에서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일과 중 하나는 신문을 읽는 것이다. 스님은 시대흐름과 불교계의 흐름을 알아야만 신도들을 제대로 교육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계셨다. 그래서 불교계 신문과 일간신문을 꼼꼼히 챙기신다. 스님은 어려서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고 하셨다. 그런 스님이 출가를 결심하게 된 동기는 우연이었다. 그러나 스님은 결코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다. “바로 위에 형이 있었는데, 그 형이 출가를 했어요. 토굴에서 수행을 했는데, 형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처음에는 잘 몰랐지. 그런데 형이 집에 갖다 놓은 불교서적을 우연히 접하면서 어느 순간엔가 부처님 철학을 연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서야 형이 왜 스님이 됐는지 이해가 됐고, 나도 저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 하지만 만약 형의 영향을 받지 않았더라도 나는 출가를 했을 게야. 언제가 됐든 불법을 만났을 테고, 그 법을 피하기는 어려웠겠지.” 스님과 대화도중 상좌스님이 차를 들여왔다.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차 맛이 어떠신가.” “예, 아주 좋습니다.” “차가 무슨 맛이 있나. 잘못 마신 게지” 무심코 한 인사말이었는데, 오히려 꾸지람을 들었다. ‘차를 잘못 마셨다는 말씀은 도대체 어떤 뜻일까.’ “무미(無味) 차가 진짜 차지. 물이 어디 맛이 있는가. 무미는 만물의 근본이지. 무미조차 알지 못하면서 진리를 어떻게 찾을 수 있겠나. 진리비동 실상이언(眞理非動 實相離言)이라 했어. 진리는 움직이지 않고 실상은 말이 없다는 뜻이지. 내뱉는 말이 모두 상(相)이듯, 맛도 그러한 것이야. 사람들은 늘 현상에 집착할 뿐 진리를 보려고 하지 않아. 불교 신도들 가운데 스님을 보기위해 절에 온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 스님에게 법문을 듣고 올바른 길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을 제대로 보는 것이야. 그런데 스님이라는 상에 기댈 뿐 자신을 탐구하려고는 하지 않아요. 스님은 그저 실상에 불과할 뿐 진리는 바로 자기 안에 있는 것이지. 스스로 자신을 찾으려 하지 않고 누구에게서 찾는다는 말인가. 실천을 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얘기를 들어도 소용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지.” 스님은 요즘 적지 않은 고민을 하고 계셨다. 초대 원로회의 의장을 맡은 만큼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스님은 요즘 만나는 스님들에게 ‘육화경(六和敬)’에 힘쓰자고 당부한다. ‘육화경’이란 ‘깨달음을 구하여 깨끗한 행을 닦는 자가 서로 사이좋게 공경하며 지내는 여섯 가지 방편’을 말하는 것이다. “육화경에는 신업동(身業同) 구업동(口業同) 의업동(意業同) 동계(同戒) 동시(同施) 동견(同見)이 있습니다. 신업동, 구업동, 의업동은 신구의(身口意)의 행위에 있어 자비심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을 대하며, 중생들이 함께 그 법을 공경하여 행하게 하는 것이며, 동계·동시·동견은 자신이 닦은 계행을 통해 얻은 덕을 베푸는 것을 말해요. 스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청정수행하면서 서로 화합하면 되는 것이지.” 스님은 애종심이 남다르기로 소문나 있다. 그것은 단순히 종단의 원로이기 때문에 갖는 책임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정작 스님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후세의 비판이다. 한국현대불교사의 한 페이지에 이기주의와 안일주의에 빠진 선배 스님들의 일그러진 모습이 기록돼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스님은 10년 전 ‘한국불교태고원’이라는 이름의 재단법인을 만들고 자신이 거처하고 있는 보현사를 재단법인에 귀속시켰다. 투명한 사찰운영을 할 때 신도들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고, 또 승가화합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소신에서다. “부처님 법은 몸과 마음에 배어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이지. 그럴듯한 말만 앞세우면서 행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그것은 부처를 파는 일이야. 초발심을 항상 유지하면서 신도들에게 그것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하는데 일부 스님들은 그렇지 못해. 혼탁한 세상을 밝혀주어야 할 승가가 오히려 세속의 손가락질을 받는데서야 어찌 감히 승가라 할 수 있을 것이며, 어찌 부끄럽지 않겠는가.” 이런 말씀 끝에 스님은 욕심 없는 승가상을 구현하기 위해 ‘승로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평소의 지론을 꺼내놓으셨다. 승려의 노후복지문제가 해결되면 굳이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하셨다. 승가가 세속의 손가락질을 받는 이유의 대부분이 재물욕 때문에 빚어지는 문제니만큼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스님은 한 달에 서너 번은 외부의 요청으로 초청법문을 한다. 법문 때마다 스님은 대중에게 혼신을 다해 공부하라고 강조하신다. 그리고 한쪽에 치우치지 말고 경전공부와 참선을 병행하라는 가르침도 빼놓지 않으신다. 한쪽에 치우쳐서는 스스로를 밝히기 힘들고, 또 다른 사람에게도 올바로 베풀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참선이라는 것은 마음의 본성을 밝히는 것이고, 경전공부는 부처님 법을 배우는 일이지. 하지만 참선만 하면 마음은 움직이나 말을 제대로 못하게 되고, 경전만 읽으면 입은 있으나 마음이 움직이지 않게 되지.‘선불심(禪不心) 교불언(敎不言)’이라는 말이 있어요. ‘말 없는 마음 없고 마음 없는 말 없다’는 얘기가 있는데, 선과 교도 그와 같은 이치야. 선과 교가 각자 제가 우위라고 싸워봐야 소용없지. 선은 교를, 교는 선을 아우를 줄 알아야 하는 것이지.” 스님과 대화를 나눈 지 2시간여가 지난 오후 2시 반쯤 되었을 때였다. 한 신도가 기자에게 점심공양을 하고 나서 더 말씀을 나누라고 권했다. 오전 12시반경 보현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 점심공양을 권하는 신도의 말이 있었지만 모두가 공양을 끝낸 시각에 다시 공양상을 차리게 한다는 것이 미안한 마음에 취재를 마치고 하겠다고 얼버무린 차였다. 스님께서도 신도의 말을 듣고는 공양을 하고 나서 얘기하자고 하시기에 대중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식탁에 놓인 수저가 15개가량 됐다. 신도들과 상좌스님들은 물론 일우스님께서도 그때까지 점심공양을 하시기 전이었던 것이다. 미안한 마음에 “저희는 모두 공양을 하신 줄 알았는데…”라며 말끝을 흐리자, 스님께서는 “같이 먹어야 맛있지” 하며 웃으신다. 상좌스님은 “큰스님께서 손님이 오시거든 같이 공양을 하자고 하셔서 모두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씨. 스님과 신도들은 그렇게 따뜻했다.
청도역 앞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이따금씩 다니는 승용차가 차지하기에 4차선 도로는 너무 넓어 보였다. 가로수는 한가로이 하품을 하고 있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한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땅은 사람을 닮는다고 했다. 그리고 사람은 다시 그 땅을 닮아간다. 일찍이 산과 물이 푸르고 맑으며 인심 또한 순후하여 삼청(三淸)의 고장으로 불리어져 왔던 청도. 청도는 스님을 닮았고, 스님은 청도를 닮았다. 이곳 사람들은 그런 청도를, 그런 스님을 사랑하고 존경한다. 그리고 모두가 스스럼없이 청도를 사청(四淸)의 고장이라고 말한다. 글=한명우 기자 사진=고영배 기자
일우스님은?
소탈·자상…“공부 게을리하면 불호령”
청도에서 어떤 행사가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는 사람이 일우스님이라고 한다. 지역의 대소사에 스님이 참석하지 않으면 자리가 빛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역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런 사랑과 존경을 받는 데는 스님의 소탈한 성격이 한 몫을 하고 있다. 스님은 지역민이나 신도들에게 친절하고 자상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격식을 차리거나 권위를 내세우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스스로 밭일을 하는 것도 이런 성격 때문이라고 신도들은 말한다. 하지만 상좌들에게는 더없이 엄하다. 10년째 스님을 모셔왔다는 혜융스님은 “공부를 좀 소홀히 한다 싶으면 여지없이 불호령이 떨어진다”며 “중이 공부 말고 무슨 할 일이 있느냐고 입버릇처럼 말씀 하신다”고 전했다. 상좌 혜묵스님도 “스님밑에서 공부하지 않고는 견뎌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일우스님은 1927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나 1943년 적천사에서 동명스님을 은사로 득도하고 1944년 동화사 강원을 수료했다. 이후 보현사 주지, 태고종 중앙종의회 의원, 태고종 경북교구종무원 종무원장을 거쳐 1998년 태고종 중앙종회 의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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