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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부처”…염불삼매들면 업장소멸
물질에 치우친 삶 수행에 장애 우리마음 정화되면 우주가 청정
염불이든 참선이든 일념으로 하세요
불법 따르려면 부처님 눈으로 모든 사물을 받아들여야
과천 경마공원 인근에 있는 유덕사는 대도시 서울 근교에 있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울창한 숲으로 들러싸여 있다. 무구(无求)스님이 지난 69년 지어 지금까지 주석하고 있는 유덕사는 5평 남짓한 법당과 조그만 요사 등 허름하기 그지 없었다. 11일 유덕사로 무구스님을 뵈러 갔을 때 스님은 법당에서 기도를 하고 계셨다. 매일 네 번 기도를 하신다고 한다. 새벽예불후, 아침공양후, 점심 먹고 또 저녁에… 스님께 삼배를 드리려는데 1배만 하라면서 스님이 맞절로 답례를 하셨다.
◇탐욕에 휘둘리는 생활을 하지말고 마음다스리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 무구스님.
◇무구스님은, 자나깨나 부처님을 생각하고 염불수행을 지성으로 하라는 가르침을 주셨다.
◇유덕사의 반찬을 책임지는 채소밭을 가꾸는 무구스님.
불교계 최대 명절인 지난 부처님오신날, 유덕사에서는 여느 초파일 때처럼 등값을 받지 않았다. 작은 절이지만 초파일때는 등을 달려는 신도들이 꽤 온다. 스님은 미리 등을 600개 정도 만들어 놓는다고 하신다. 그리고는 마음대로 등을 달게 한다. 정 그냥 가기 미안해 하는 신도들은 형편대로 등값을 법당 탁자위에 올려놓기도 한다. “스님, 절에서는 초파일 등값으로 1년을 산다는데 어떻게 사시려고 그러세요?” 사람들이 ‘걱정 아닌 걱정’을 하지만 스님의 대답은 간단하다. “부처님 생신날 불제자로서 경축하면 됐지, 등 팔아 돈벌이 하는 날인가요? 부처님 따르겠다는 마음으로 등을 밝히면 되는 거고.” 그래서 유덕사의 등은 모두 똑같은 크기다. 불자들이 부처님 생신날을 축하하고 부처님처럼 살겠다고 새롭게 발심하며 등을 밝히면 그것으로 됐다는 것이다. 스님은 49재가 들어와도 얼마 내라고 지정해 주지 않는다. 자기 집의 재정상태를 자기가 아는 만큼 성의껏 내면 된다. 절에서는 천도만 정성껏 해 주면 그뿐이라는 것이다. “수행자는 부처님 모시고 수행만 잘 하면 되지 돈 관리 같은데 마음 쓰면 수행에는 멀어지는 법”이라는 방침따라 유덕사에는 불전함도 없다. 그런데 허름한 집에서 30여년을 사셨는데 중창할 생각은 안 하셨을까. “이곳에 들어온 후 그린벨트 지역으로 지정되어 그런 생각을 안해 보았지만 나는 외양 잘 꾸미는 데는 관심이 없어요. 크고 화려한 절에서 도리어 그 운영 때문에 소임자들이 쩔쩔 매는 것도 많이 봤고… 사실 개울가에 앉아 있으면 어떻고, 절벽끝에 앉아 있으면 어때요. 수행을 하려는 마음만 굳으면 장소의 좋고 나쁨은 문제가 안돼요. 요즘 한국 승가는 물질적으로 너무 풍족한데 그것이 오히려 수행에 장애가 될 수 있어요. 단순하게 살아야 수행이 됩니다.” 스님 말씀이 가슴에 와닿는다. 집을 늘여서 보다 큰 집, 넒은 집으로 이사가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 중생들의 꿈이지만, 막상 큰 집에서 살면 그 집을 유지하거나 채우기 위해 급급해 하고 신경 쓸 일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늘 부족함과 불만을 갖고 있지만 살펴보면 우리는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 가진 것을 놓지 않으려고 손을 움켜쥐고만 있어 더 어려운 곳에 손을 뻗치기가 어려운 것이 또한 우리의 현실이다. 가진것 많은 현대인들의 마음이 더 허전한 것도 물질위주의 그릇된 가치관과 소비 위주의 잘못된 대중문화의 세뇌를 받아 자꾸 밖으로만 찾고, 많이 소유하려는 집착에 사로잡혀서가 아닐까. ‘행복한 삶은 어떻게 사는 것인가’를 늘 생각해야 한다는 무구스님의 말씀에 귀기울여 보자. “사람들은 보통 ‘이것만 되면 난 더 바랄 것이 없는데, 저것만 성취하면 행복해 질텐데’ 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예요. 바라는 대로 이루어져도 또 불만이 생기고 욕심이 생깁니다. 탐욕이란 채워지지 않아요. 그래서 선 조사들이 다른 곳에서 찾지말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라 한 겁니다.” 스님은 또 덧붙인다. “큰 스님들이 발이 닳도록 다녀 시주를 모아 절을 잘 지어놓거나 중창해 놓았지요. 스님이 세상을 떠나고 그 절에 사는 사람들이 수행을 잘 하면 훌륭한 수행처지만, 수행을 제대로 못하거나 도리어 부처님말씀에 반하는 행동을 거리낌없이 한다면 그곳은 마구니소굴밖에 안되는 거예요.” 올해 세수로 일흔 넷이지만 나이가 드니 젊을 때 공부를 더 열심히 할 것을 하는 후회가 있다고 하신다. 해방무렵 문경 김용사에서 열일곱의 나이로 출가한 무구스님은 김용사 강사인 은사 화산 스님에게 경전도 배우고 선방에서 안거도 여러 차례 났다. “얼마 전에 수좌가 한명 찾아왔어요. 염불은 안되니 참선하세요 그럽디다. 나도 과거 선방에 다닐 때는 참선만 제일인 줄 알았어요. 그러나 참선과 염불이 둘이 아닙니다. 참선하는 스님은 참선만 해야지 염불하면 성불 못한다 하는데 뭐든지 지성으로 해 삼매에 드는 것이 중요하지, 이것이 수승하다 저것이 더 낫다 하는 분별심 가지고 수행하면 안됩니다.” 과거 전생부터 참선을 많이 해 어느 정도 익어진 사람은 참선으로 견성하기 쉽지만 업이 중한 사람은 참선삼매에 들기 힘든 만큼 염불로 업장을 녹인 다음 참선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일러주셨다. “예전에 내가 선방 다닐 때 선방에서 조실스님이 결제법문과 해제법문은 하셔도 참선할 때 어떻게 해야 잘 되는지 자상히 일러주지 안 했어요. 그래서 (참선수행이) 어렵습니다. 업이 두터우면 아무리 참선 하려고 가부좌 틀고 앉았어도 망상만 떠올라요. 또 해제하고 다른 절에 갈 경우가 있어요. 그곳의 큰 스님이 잘 살펴서 근기에 맞는 화두를 주어야 하는데 그 스님이 꿰뚫지 못하고, 너 무슨 화두를 가졌느냐 물어보거든. ‘무’ 자 화둡니다 하면 이눔아 그 화두 갖고 안된다 하시며 다른 화두를 줍니다. 받아드는 사람은 큰 스님의 지시니 (그 화두로) 금방 성불할 줄 알거든. 그래서 마삼근 화두를 붙잡고 한철 나게 되지요. ‘마삼근…’ 하지만, ‘무’자 화두가 저절로 들려, 마삼근으로 돌리는데만 한 철이 가요. 한철 그냥 좇아다니는 거야. 자기 머리에 착 잡히는 것이 화두가 되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니까 어려운 일이지요. 결국 마음이 바로 잡혀야 되지 다른 도리가 없어요. 참선수행자에게는 자상하게 일러 주고 점검해 주는 선지식이 옆에 있어야 하는데 그게 어려운 일 같아요” 예전 일을 잠시 회상한 스님은 그냥 입으로만 하는 염불은 백날 외워도 헛일이라고 강조하신다. “우리가 본래 부처라는 사실을 안다면 부처님 명호는 본래 자기의 참이름이라고 할 수 있지요. 염불을 하면 저절로 마음이 정화되고 우리 마음이 정화되면 그만큼 세상이 청정해지고 우주가 정화된다고 믿으면 됩니다. 부처님 말씀을 따르려면 부처님의 눈으로 모든 사물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염불도 그냥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본래 부처라는 사실을 일념으로 믿고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오로지 염불 삼매에 빠져야 업장이 녹아집니다.” 염불삼매에 들려면 취미삼아 하는 것처럼 하다 말다 하지말고 지속적으로 해야한다. 그래야 망상이 생기지 않고 저절로 입에서 염불이 나온다. 일하면서도 휴식시간에도 자기전에도 늘 부처님을 생각하며 염불을 해야 한다. 시냇물에 떠내려가는 배춧잎 하나를 줍기 위해 10리를 따라 내려왔다는 옛날 큰 스님 이야기가 전할 만큼 절에서는 고춧가루 한 톨, 종이 한 장 함부로 낭비하는 일이 없다. 원로 스님들 일수록 절약에 철저하다. 옛날 절살림이 몹시 어려웠으므로 철저하게 검약하며 사는 법을 몸에 익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재인 시줏물을 함부로 축내서는 안된다는 확고한 사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구스님도 철저하다. 자가용이 없는 스님은 혹 외출을 할 때도 큰 길까지 나가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큰 길까지 가려면 십리도 넘는 먼 거리지만 스님은 혹 누가 중간에서 차를 태워준다고 해도 거절하신다. “다리 멀쩡한데 걷는게 좋다”는 것이다. 멀리 출타를 하더라도 신도집 신세를 가능한 지지 않으려고 한다. 부득이 신도들 집에 들릴 일이 있을 때 신도들이 거마비라며 드리는 경우가 있다. 스님은 거의 받지 않지만 부득이 받을 경우 그 돈으로 꼭 향, 초를 사서 불전에 공양 올린다. “정재를 소중히 써야 합니다. 내가 출가할 당시는 물자가 귀한 때니까 은사스님께서 당신이 입던 장삼을 줄여 출가기념으로 주셨지요. 그래서 더 귀하고 소중하게 생각하고 입었습니다. 요즘엔 뭐든지 흔해서 절집에서조차 절약정신이 희미해 졌어요. 요즘 같은 물질위주 세태일수록 정신적인 것에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불자들부터 물질적인 행복추구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우쳐야 합니다.” 물질적 쾌락만을 좇다보면 정신은 황폐해지고 허전해 지기 마련이기에 이것처럼 경계해야 할 일도 없다는 말씀이다. 스님은 재가불자들이 수계할 때 받은 오계만이라도 지키도록 노력하라고 하신다. 또 가능한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신다. 고기라는 것이 동물들이 강제로 죽임을 당하면서 분노에 찬 독을 내뿜어 몸에 안 좋은 것도 있지만 원래 채식동물인 인간은 대장이 긴데 고기 먹으면 그 대장에서 소화되어 나가는 기간이 길고 따라서 고기를 소화시키면서 내뿜는 독소가 간장에 침입한다는 것이다. 요즘 간암, 간경화 등 간장병이 많이 생기는 이유도 우리 사회에 만연된 육식문화 때문이라는 것이다. 육식을 안 하면 불살생계를 지켜서 좋고 건강에도 좋으며 채식을 하면 마음이 평화로워 진다. 스님은 요즘 불자들이 수행에 관심을 보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깨달음을 향해 정진하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며 참선이든 염불이든 일념으로 하기를 강조했다. “신묘장구대다라니가 신묘한 진언이지만 수천번을 외워도 마음이 다른데 가 있으면 아무 영험이 없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창공보다 넓고 바다보다 깊은 불법을 만났으니 그냥 저냥 안개와도 같은 허욕에 휩싸여 목적없는 생을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불제자다운 참다운 서원을 세우고 인과법을 믿으며 수행을 게을리 말기 바랍니다.” 글=이경숙 기자 gslee@buddhapia.com 사진=고영배 기자 ybgo@buddhapia.com
무구스님은?
17세때 김용사로 출가…본원종 원로의장
무구 스님은 1929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났다. 귀한 손자가 태어나자 조부는 사주를 세 번이나 보게 했는데 나중에 ‘중 될 팔자’라는 사주가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스님이 되고 싶어 열일곱에 김용사로 갔다. 처음엔 받아주지 않아 부목방에서 잠자면서 걸레로 마루도 닦고 마당도 쓸고 하니까 당시 강사였던 화산스님이 지켜보다 초발심자경문 암기를 시키는 등 자질을 보고 출가시켰다. 예불 불공 시식 등 불교의식 공부를 마치자 화산스님을 은사로 계를 받을 수 있었다. 강원에 들어간 스님은 이미 진척돼 있는 공부를 따라가기 위해 밤이면 큰 화로에 재를 담아 강당 지대방에 가져다 놓고 몰래 공부하곤해 나중엔 월반까지 했다고 한다. “부젓가락으로 재를 들쑤셔 훅 불면 재가 벌개지니까 그 빛으로 책을 읽곤 했는데 그때는 젊어 눈이 좋아 그런지 책글씨가 다 보여. 그렇게 밤새 공부하고 아침 기침종 치면 나가곤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강원을 졸업하고 선방을 10년정도 다니다 1950년대 후반에는 청담스님의 추천으로 설악산 신흥사 주지를 하기도 했다. 당시 모 스님에 의해 신흥사 소유 10만평 땅이 팔린 것을 알게된 스님은 재판을 해 신흥사에 되찾아 주기도 했다. 스님은 태허 스님(현 본원종 종정) 등과 89년 본원종을 창종하고 현재 중앙원로의장으로 있다. 요즘 유덕사에는 ‘절대 사수, 유덕사는 영원하리라’ ‘과천사암연합회는 끝까지 유덕사를 지키겠다’는 말이 쓰여진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이 근처로 기무사 이전이 결정됨에 따라 절이 폐쇄될 위기에 놓이자 신도들과 과천사암련이 유덕사를 지키기 위해 백방으로 나서고 있는 것. 무구스님의 소원은 한가지다. “그냥 여기서 목탁 치며 기도하다 죽었으면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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