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는 모든 생명을 내 생명과 같이 생각하기에 언제 어디에서나 위험에 처한생명들을 살리기 위한 실천적 수행이 이어져 왔었다. 이를테면, 물밖으로 나와 괴로워하는 물고기를 만나면 물이 있는 곳까지 데려다 놓아 주었다. 그리고 배고파하는 중생을 만나면 밥을 주고, 진리에 목말라하는 중생에게는 법을 설하여 주어 모두가 고통에서부터 벗어나도록 이끌어 주었던 것이다. 그런 뜻을 받들어 생명존중의 실천적 수행으로 방생이 법회로서 사찰에 정착하게 되었다. 방생의 의미를 바로알아 자신이 처한 곳에서부터 모든 생명을 두루 살려 더불어 행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에 와서는 방생을 잘못 이해하여 생기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에 방생의 올바른 자세에 대하여, 대행스님의 말씀으로 그 의미를 되새겨 보자. "요즈음 방생은 놀부방생이 되고 있다. 예전의 방생은 비가 올 때 하늘에서 빗물과 함께 떨어진 미구라지 따위를 살려주는 것을 가르켰다. 말하자면 흥부방생이다. 그런데 요즈음엔 잘 지내고 있는 고기를 일부러 잡아다가 다시 놓아 주고 있으니, 일부러 제비다리를 부러뜨린 다음에 처방해 준 놀부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설사 그 물고기가 다시 살 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헤어진 제 가족과 다시 만나게 해 줄 수는 없을 터이니, 물고기 이산가족을 만드는 셈이다. 사람이나 물고기나 아픔은 다 같다. 부처님의 대자대비를 이야기하는 불자로서 어찌 그런 방생을 하고 있단 말인가! 예컨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제 때 탄광 등으로 끌러갔다가 8·15해방을 맞아 고국에 돌아온 것은 일부러 물고기가 사람에게 잡혔다가 다시 놓여난 것에 비교될 수 있다. 비록 해방이 되어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가정은 파탄되어 그 사람에게 있어서 모든 것이 옛날로 되돌아온 것은 아니듯이, 방생된 물고기의 경우도 다시 예전의 물고기는 아닌 것이다. 이미 몸이 상하고, 가족과도 헤어졌기 때문이다. 비록 하찮은 물고기의 문제라 하더라도 사람의 문제처럼 진지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현대불교미디어센터 ⓒ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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